'층간소음 악연'이 만든 참사..방화범 '가만 안 둔다' 협박

이어 A씨는 옆 빌라 현관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려 했으며, 현관문을 열던 주민이 불을 쏘는 A씨를 보고 급히 도망치는 장면도 포착됐다. A씨는 또 다른 빌라의 가스 배관에도 불을 붙여 창살이 녹아내릴 정도의 큰 화재를 일으켰다. 연쇄 방화를 마친 A씨는 오전 8시 10분경, 기름통 두 개를 싣고 오토바이를 타고 과거 거주하던 아파트로 이동했다. 이 아파트는 과거 A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심한 갈등을 겪었던 곳이었다. A씨는 지하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4층으로 올라가, 갈등 대상이었던 401호와 404호에 차례로 불을 질렀다. 주민들에 따르면 “위층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펑 소리가 났고, 곧이어 연기와 함께 ‘살려달라’는 비명이 울렸다”고 전했다.

이 불로 인해 80대 여성 두 명이 전신 화상을 입었으며, 다른 네 명은 연기 흡입 및 낙상으로 다쳤다. A씨는 화재 현장에서 전신 화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오토바이에서는 두 개의 기름통과 불을 지르기 위해 사용된 농약 살포기가 함께 발견됐다. A씨는 이 아파트에서 지난해까지 거주했으며, 당시 윗집 주민과 반복적인 층간소음 갈등을 겪었다. 실제로 지난해 9월엔 쌍방 폭행으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사건은 종결됐다. 이후에도 A씨는 천장을 두드리거나 새벽에 악기를 연주하고, 이웃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괴상한 행동을 반복했고, 결국 거주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강제 퇴거 조치를 받았다.
A씨는 이후 모친이 살고 있던 인근 빌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이웃들은 A씨가 공사장 소음을 문제 삼아 공사 인부와 다투다 벌금을 냈으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창문 밖으로 침을 뱉는 등의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했다. 또한 A씨가 과거 우울증 약을 복용했으나 최근에는 먹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건을 분석한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A씨의 방화가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닌, 일종의 '정화 의식'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반적인 방화와 달리, 농약 살포기를 개조한 도구를 사용하고, 유서를 남긴 채 불을 지른 것은 자살을 앞둔 의식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는 피해망상과 범죄적 망상이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층간소음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가 층간소음 가해자로 오해받는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가 정신질환 관련 약물을 복용했지만, 증세가 악화되면서 망상이 커지고 결국 극단적인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 사건은 반복적인 이웃 갈등과 정신질환 관리의 공백, 사회적 안전망 부재가 결합해 벌어진 비극으로, 유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민들은 여전히 충격과 불안 속에 있으며, 아파트 단지 전체가 깊은 침묵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