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자들 자산 분산법 "안전자산이 최고"

 국내 자산가들의 투자 전략이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이른바 ‘부자’들 사이에서는 실물 경기와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지며, 금과 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을 이동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임대업에 종사하는 A씨는 최근 1억원 상당의 골드바를 매입했다. 그는 “주식이나 부동산만 들고 있는 건 위험하다”며 “예측할 수 없는 경제 상황에 대비해 금을 확보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준다”고 말했다. 이처럼 실물 자산을 넘어 금과 같은 전통적 안전자산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16일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발표한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자산가 10명 중 7명 이상(74.8%)이 올해 경기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62.8%였던 수치보다 증가한 것이다. 보고서는 2023년 12월 한 달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응답자 3010명 가운데 부유층은 884명이 포함됐다.

 

특히 이들은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더욱 비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체 부유층의 63.9%는 올해 부동산 경기가 지난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와 더불어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산 가격 하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불확실성이 짙어진 경제 환경 속에서 부자들의 자금은 점차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투자 의향이 가장 높은 자산은 예금으로 40.4%에 달했고, 이어 금(32.2%), 채권(32%)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만으로는 자산 증식이 어렵다고 판단한 부자들은 상장지수펀드(ETF), 주식, 가상자산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TF에 대한 투자 의향은 29.8%, 주식은 29.2%, 가상자산은 17.9%를 기록했다. 부동산은 이보다 낮은 20.4%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로 가상자산을 보유한 부자 비율도 점점 늘고 있다. 2023년 9.9%였던 보유 비율은 지난해 13.6%로 증가했다. 자산군별 선호도에서 가상자산은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이 같은 성장세는 새로운 자산 트렌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 이하의 젊은 부자층, 이른바 ‘영리치’들은 비교적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해외 주식과 가상자산에 적극적인 투자 의향을 드러냈다. 이들의 주식 보유율은 78%로 50대 이상 부유층(66.4%)보다 높았고, 전체 주식 중 해외주식 비중은 30%로 고령층(20%)보다 우세했다. 올해 해외주식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겠다고 응답한 이들도 있었다.

 

가상자산 보유율 역시 영리치는 29%에 달해 50대 이상 부자(10%)의 거의 세 배에 이른다. 영리치의 적극적인 투자 행태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면서도 정보 접근성과 리스크 수용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유층을 넘어 중상층까지 포함해보면,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은 더욱 뚜렷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유층과 중상층을 합친 집단에서 가상자산 보유 비중은 2022년 12%에서 2024년에는 18%로 증가했다. 평균 투자 금액은 약 4200만원이며, 가상자산을 4종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전체의 34%에 달했다. 단일 종목에 목돈을 투자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분할 매수하는 ‘수시 매입’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금융연구소 황선경 연구위원은 “부자들이 대내외 경제 및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분산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48.3%)은 올해 금융 투자 수익률로 연 5~10%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자들의 이 같은 투자 전략 변화는 고정된 자산군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젊은 부자층의 행보는 기존 자산관리 방식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자산가들의 움직임은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