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폭등이 남긴 후폭풍..하반기 물가 더 오른다

지난해 말 급등했던 환율이 올해 물가 안정에 예상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환율 변동이 개별 품목에 미치는 영향을 세부적으로 분석한 결과, 환율이 급등기를 거친 후 안정되더라도 특정 품목을 중심으로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에도 환율 상승의 여파가 남아 있어 한국은행이 제시한 물가 상승률 전망치(1.9%)보다 실제 물가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27일 발표한 '환율의 장단기 물가 전가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5%포인트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환율 10% 상승 시 물가 0.2~0.3%포인트 상승'보다 더 큰 영향이다. 특히 환율이 급등한 이후 안정세를 보이더라도 이미 상승한 환율이 근원 품목을 중심으로 장기간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올해 하반기에도 환율 상승의 여진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이 분석에서 강조됐다.

 

한국은행 조사국의 조강철 물가동향팀 차장은 환율 변동이 단기와 장기에 걸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가 0.28%포인트 오르고, 장기적으로 0.19%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를 종합하면, 연평균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5%포인트 오르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환율의 소비자물가 전가 효과는 단기와 장기의 비율이 6대 4 정도로 나타났으며, 환율 변동 후 9개월 시점에서 전가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는 점도 확인됐다.

 

특히 최근과 같이 환율이 급등한 후 3개월 이상 유지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31%포인트 증가했고, 장기적으로는 1.30%포인트까지 상승해 장기 효과의 증가 폭이 더 컸다. 이는 기업들이 환율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가격 인상을 미루다가 결국 가격을 올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 차장은 "환율이 일정 기간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동참하면서 환율의 물가 전가 효과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에도 지난해 환율 급등의 영향이 남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시사된다.

 

 

 

품목별로 환율 변동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환율이 상승한 후 3개월 이내에 가격이 빠르게 반응하는 단기 민감 품목은 45개로 나타났으며, 이후 9개월간 누적 효과가 지속적으로 반영되는 장기 민감 품목은 73개였다. 단기 민감 품목 45개 중 비근원 품목이 절반가량을 차지했으며, 이 가운데 휘발유·경유·등유 등 에너지가 6개, 수입 쇠고기·오렌지·바나나 등 식료품이 16개 포함됐다. 반면 장기 민감 품목은 근원 품목이 55개로 비중이 높았으며, 외식(쇠고기·칼국수·치킨 등 19개), 국내 항공료·목욕료·승용차 임차료 등 개인 서비스(17개)와 같이 가격 지속성이 높은 서비스 품목이 많았다.

 

한은은 환율 민감 품목이 비민감 품목보다 생산 과정에서 수입 중간재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 민감 품목의 경우 중간 투입액 중 수입액 비중이 37.4%로, 비민감 품목(14.2%)보다 훨씬 높았다. 장기 민감 품목(16.3%)도 비민감 품목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 차장은 "환율이 변동할 때 가격이 크게 반응하는 품목일수록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환율 단기·장기 민감 품목 가격을 각각 가중 합산한 '환율 단기 민감 물가'와 '환율 장기 민감 물가'의 변동성을 비교한 결과, 단기 민감 물가는 환율 급등기에 빠르게 오르고 내리는 변동성이 컸지만, 장기 민감 물가는 같은 기간 동안 변동 폭은 작지만 환율의 영향을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민감 품목은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았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업종 등에서 점진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구조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환율이 단기적으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지난해 말 환율 급등이 단순히 일시적인 충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올해 하반기에도 지속적인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제시한 물가 상승률 전망치보다 실제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정책 당국은 이를 고려한 물가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